정책당대회를 앞두고 내놓은 결의문 초안을 통해보면 자주·평등·평화통일의 이념과 가치를 민중의 힘으로 실현하자는 기치아래 진보연합의 실현과 반MB·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하자는 대강을 그려놓았다. 나열된 기치와 구호만으로는 당면한 주요과제를 아울러 당이 실현해낼 포부를 절적히 표현하고 있는듯하다.
그런데 왜 포부가 포부답게 와 닿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위기에 대한 정세인식이 날이 서있지 못하다.
당면한 저들의 위기는 ‘미국발’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본령에서 체제의 (몰락)위기를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위기는 이미 확대되고 있다. 저들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유럽과 동아시아로 번지고 있으며 공황은 미국의 은행들을 집어 삼키며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들의 위기는 우리의 재앙이기도하다. 저들의 위기에는 순서가 없어도 위기를 전가 받는 데에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얽혀있는 세계 곳곳의 민중이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희대의 대통령 MB를 만난 이 땅 민중의 삶을 더 말해 무엇하랴.
체제가 내부로부터 동요하고 재앙과 같은 고통이 민중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시점에서 필연적 인식은 체제의 종언 앞당기고 고통의 근원을 끊어내는 대안적 질서에 대한 논의와 실천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민생문제 해결과 사회양극화 해소’와 같은 구호로 당의 입장이 정리 되어 있으니 도무지 운동적 포부가 읽히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진보대연합 실현’의 진정성이 읽히지 않는다
용산참사에서 시민사회가 실망스럽게 도피할 때 영향력 있는 전선의 부제는 참으로 뼈아픈 것이었다. 02년 미선이 효순이 투쟁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반미의제에 시민사회와 대중을 어찌 인입시킬 것인가’하는 운동적 고민이 깊게 묻어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를 통과하면서 (촛불)군중집회의 양상은 달라졌다. 전선의 역할이 유실된 채 ○○대회준비원회가 준비하는 ○○대회의 반복과 운동적인 책임이 없는 행동전의 양상이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노전대통령 추모 노제부터 오늘까지의 투쟁 과정이 그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 위원회’는 해산선언문에서 기존의 전선을 넘어선 ‘전국 시민사회단체 시국모임’을 구성 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바 범민주세력의 제 결집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 호소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시절 정책적 갈등과 공방의 한 당사자였던 시민사회단체 역시 성찰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합니다.”라는 자기성찰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반성과 함께 범 민주세력의 재 결집을 하겠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진정한 반성이 없는 재집결은 역사의 반복일 뿐이자, 고통과 한숨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노동자 민중을 위한 조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일까?
또한 다른 측면에서 민주노총 등의 대중단체의 심각한 부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하나의 사업장의 투쟁이 전선을 형성 할 수 있음을 지난 투쟁의 과정에서 우린 배웠다. 전체민중과 자본과 정권의 이해 요구가 그 곳에서 가장 격렬하게 그리고 정면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당면하여서는 화물연대의 투쟁이 쌍용차의 투쟁이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며 한판 큰 싸움으로 만들어 졌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투쟁은 확산되지 못했고 전선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요구를 집중하고 투쟁을 확대함으로서 정세의 주동을 실행하는 일차적 책임 요소가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대중단체의 부실이 정세를 선도해야 하는 운동의 주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민중연대와 당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두 조건에서도 과연 계급적 기반이 튼튼한 당과 전선의 실현이 선언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계급적기반을 확실히 하자는 포부가 아닌 포부답기 위해서는 ‘5만 당원 확대’ 같은 선언적 구호를 내걸 것이 아니라 운동적 부실의 현실의 아픔을 딛고 선도적인 투쟁으로 함께 전선을 개척해나가는데서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반MB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기층의 투쟁으로 만들어 져야 한다는 것은 이미 ‘민중과 함께 승리하는 투쟁 전략’이라 표현하지 않았던가.
강행되는 한미fta 속에서, 용산과 쌍차에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노동 속에서 민중의 고통과 울분의 근원을 당장에 끊어내는 한판의 싸움을 만들어내지 못할지언정, ‘간난신고’를 뚫고라도, 우리 함께 밀고 나가자는 운동적 기세와 의리라도 다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점에서 당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제대로 된 성찰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결과적으로 민주연합론’이라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결의문 초안은 투쟁보다는 2012년 담론에 관심이 가있다 듯하다. 당 안팎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이미 연립정부며 국민적 진보정당이며 진보정치연합당론 등을 심심치 않게 이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결과 일 수도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주체의 임무와 과제의 실천의 부족함에 비교해 볼 때 지나치다.
더욱이 ‘대중이 요구하는 염원과 정세에 걸맞게 투쟁의 과녁을 한나라당과 이명박정권으로 명확히 설정하고 여기에 모든 당력을 집중하여야’한다는 전략전술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 자꾸만 민주연합론으로 읽혀지는 것을 어찌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386과 87체제 민주대연합 전략의 패러다임이 그 이상으로 한 치도 더 나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종착점에 서서 “일단 모이자”라는 무책임한 우를 범해서는 않된다. 제도권 정치는 바람을 따라가더라도 운동은 운동의 길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당면한 담론들은 현재적 수준에서 그 자체가 진전이 있지 않다, 진보대연합의 실현과 대안적 사회로 한걸음 더 나가는 길을 더더욱 아니다. 특히 선거라는 공간에서 대중을 주체로 세우는 원칙이 무너졌던 기억이 한 두번이 아니었음을 상기 할 때 연립정부 등이라는 상상력이 명분이되어 사회변혁의 전략적 기치를 희석시켜서는 않된다. 그 결과는 그나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과 정치대안(연립정부 등 의)마저 스스로 묶어두게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