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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추구 대신 지역사회 기여로 주민들 신뢰 ‘차곡차곡’
얼마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A씨(71세)는 수술 후 다리 저림이 심해져 의사에게 하소연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수술하면 빨리 낫는데, A씨는 나이가 많아 회복이 느리다”는 타박만 듣고 왔다. 이래저래 마음이 상한 A씨는 다른 병원으로 옮길까 하다가 고가의 검사비 걱정에 생각을 접었다.
부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이성민(53세)씨. 신길동에 사는 이 씨가 월피동에 있는 의료생협에 오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5년째 꾸준히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다른 병의원에선 접할 수 없는 ‘가족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거리가 좀 멀지만 ‘우리 병원’이란 소속감도 있고, 의사나 간호사가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져 좋습니다.”
“원래 당뇨 때문에 대학병원 댕기다가 경로당 할마씨들이 (이 병원)의사선생님이 자상하게 잘 봐주고, 진료비도 싸다고 하길래 와봤제.”
내과 대기실에 들른 우세옥 의료사업부장이 전 씨에게 다가가 “어떻게 오셨냐”고 묻자 전 씨는 당뇨와 혈압수치를 적은 수첩을 꺼내 보이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우 부장도 전 씨의 수첩을 살펴보며 “지금은 (혈당수치가)정상수치”라며 “의사선생님과 잘 상의하셔서 약 처방을 받으시라”고 살갑게 챙겼다.
조합원이자 간호사인 이상희 씨는 “주민 분들이 이 곳 주치의나 간호사들을 모두 딸, 아들처럼 느끼시는 것 같다”며 “저희도 최대한 주민 분들의 성함을 기억하려 하고 차 한 잔이라도 권하며 말벗이 돼드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의료생협엔 현재 4800세대가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조합원 수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김초환 안산의료생협 전무이사는 “월피동 주민의 23%가 안산의료생협을 이용하고 있다”며 “(병원)위치상 접근도가 좋은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곳을 이용한다는 건 그만큼 신뢰도가 높고, 우리가 가진 긍정적 이미지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산의료생협이 이렇게 주민 속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김 전무이사는 “철저한 조합원 중심의 경영 및 운영, 그리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 등으로 주민과 신뢰를 쌓은 결과”라고 전했다. 환자를 이윤추구나 지도의 대상이 아닌 ‘알권리’, ‘자기결정권’, ‘개인 신상을 보호받을 권리’, ‘배울 권리’, ‘진료 받을 권리’, ‘참가와 협동’으로 대표되는 ‘환자권리장전’의 주인으로 대하려 끊임없이 실천하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실제 조합원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의료진과 자신의 병에 대해 상담하면서 궁금증을 풀고, 늦은 밤에도 의사에게 전화해 필요한 조치에 대해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의료진을 ‘주치의’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의료진들은 일주일에 한 번은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를 위해 방문 진료를 나가고, 조합원 개개인에 맞춘 진료 말고도 생활 처방과 추후 관리를 진행한다. “이윤만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의료생협이 단순히 1차 중심의 진료서비스를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전체적인 건강 수준이 향상되는 걸 추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세옥 의료사업부장의 얘기다.
주민의 신뢰를 얻게 된 데엔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합리적이고 정직한 가격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양의원에선 예방접종비 할인을, 한의원에선 한약첩약에 대해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치과에선 비보험 진료에 한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실제 금보철의 경우 28만 원으로 시중가보다 30%가 저렴하다.
이런 가격 책정이 가능한 건 조합원 대표, 의료진 등이 참여하는 경영위원회에서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곳 치과에서 임플란트 가격을 144만 원으로 정했다가 120만으로 낮춘 뒤 그전에 시술한 6명의 환자에게 차액 24만 원을 되돌려 준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원자재가 등의 인상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경우엔 어떻게 할까. 김초환 전무이사는 “가격 인상이 필요한 경우엔 경영위에서 합당한 가격을 책정하고, 이용위원회를 거쳐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된다”며 “이렇게 결정된 뒤에도 몇 개월 동안은 유예를 시킨 다음 주민에게 충분히 홍보를 한 뒤 바뀐 가격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지원 절실… 양?질적 확대 과제
노골적인 이윤추구 없이도 안산의료생협은 2008년 이후 흑자경영을 하고 있다. 사실 안산의료생협도 2000년 개원한 뒤 몇 년 간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8년 대대적인 조합원 확대사업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게 됐다. 지금은 한 달에 1만 원씩 출자해주는 CMS회원이 1300명이나 된다. 매월 1천만 원 이상은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셈이다. 이는 시설장비 마련이나 다음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밑천이 된다. 이밖에도 안산의료생협이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고혈압 당뇨 환자들을 위한 고혈압 당뇨교실, 초보 엄마와 사춘기 자녀들을 위한 초경학교와 같은 건강강좌는 물론, 전문 강사와 간호사 등이 함께 하는 걷기모임, 요가모임, 산악회, 옥상텃밭 소모임 등 건강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날도 조합원실에선 어르신 조합원들의 소모임인 ‘한울타리’의 할머니 조합원들이 송년회에서 공연할 ‘어르신 건강체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공연연습을 하던 윤옥순(85세)씨는 “의사는 친절하고 소모임이 너무 재밌다보니 8년 동안 이렇게 (병원에)나오게 된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모든 의료생협이 안산의료생협처럼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건 아니다. 의료생협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일반 병의원과 의료인들의 견제 또한 상당하다보니 대다수 의료생협들이 초기에 빠른 성장을 못하고 답보한다. 더군다나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돼 몇 군데를 제외하곤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의료생협운동에 닥칠 타격 또한 만만찮아 보인다.
우세옥 의료사업부장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의료생협을 국가적으로 인큐베이팅(지원육성)해야 한다”며 “준(準)보건소 형식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뒤따라야지만 의료생협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초환 전무이사는 “한미 FTA로 인해 의료비 폭등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건강과 의료를 매개로 하는 의료생협의 존재 의미나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라며 “의료생협에 더 많은 주민들이 함께하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산의료생협은 지난 10일 정기대의원 예산총회를 열어 내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경창수 안산의료생협 이사장은 “지난 3년 동안 양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에 걸맞는 내적, 인적역량을 강화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당장 내년엔 활동조합원을 500명으로 늘리고 직원과 조합원 교육을 늘릴 계획입니다. 또 향후 5년 안에 조합원을 1만 세대로 확대하는 중장기 계획도 세울 겁니다. 그래야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서도 지속가능한 의료생협을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까요.”
진보정치 547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