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경동 시인께서 서울시의회 비례후보로 출마한 오석순동지에게 보내온 글입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여성노동자 오석순.

                                                 송경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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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본 것은 1995년이었다.

 가난한 여성노동자로 어려서부터 현장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구로 공단에서 악독하기로 소문났고, 난공불락이라는 대성전기에 기적처럼 노동조합을 세우고 부위원장으로 일하던 주역이었다. 다시 표적 해고를 당한 그는 혼신으로 1998년 공장이전으로 다시 눈물을 머금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내리기까지 혼신을 다해 싸웠다.


기억난다.

1998년 그해 어느 여름. 지역의 곰팡내나는 한 반지하 단체 사무실에서 대성전기 노조 해단식이 열릴 때 나도 그 어느 후미에 고개 숙이고 있었다. 가난한 여성노동자들이 안고 업고 온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산만하던 비좁은 공간에서 ‘이제 다시 어딘가로 팔려 갈 우리 아줌마 조합원들을 생각하면…’이라고 해단 보고를 하다 끝내 고개를 돌리고 흑흑 울어 버리고 말던 그와 그의 순박한 동지들. 그간 함께 해주었던 연대 동지들에게 미안하다고 ‘처음처럼’이라는 글귀가 적힌 작은 비닐 족자 하나씩을 들려주던 그들. 반지하 계단을 올라오는데 옆 칸 봉제 마찌고바에서는 그 틈에도 드르륵 득득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촉 낮은 백열등 불빛 아래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너무도 밝은 햇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한 잔 받아먹었던 막걸리 탓일까. 나는 근처 골목으로 들어가 펑펑 울고 말았다.


그는 대성전기 싸움이 끝나곤 독산동에서 함께 했던 여성노동자들의 아이들을 도맡는 지역공동체육아운동 <함께 크는 아이들>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일했다. 스무살 여공으로 1986년 삼양라면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 1989년 의정부 동양트랜스에서 해고당했던 그를 구로공단 어느 공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6년여 그는 동료 여성노동자들의 어린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곤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20여년 노동자로 살아 왔건만 공단의 현실은 더욱 비참해져 있었다. 860만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허울좋은 민주화 공론에도 불구하고 근로조건은 그가 처음 노동자로 발 디디던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나이도 이미 마흔줄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엔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1,840원을 받는 기륭전자 파견직 여성노동자였다. 잡담했다고 해고당하고, 병가를 낸다고 해고를 당해야 하는 공장이었다. 갓 결혼해 신혼인 여성은 출산휴가를 주지 않기 위해 3개월 계약, 미혼여성은 6개월 계약이었다. 모두가 1년 미만 계약의 하루살이 목숨들이었다.


2005년, 문자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시오’ 단 한마디로 그는 해고 되었고,부당한 해고에 맞서 그곳에서 그는 다시 민주노조의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200여명의 동료 여성노동자들이 모두 부당 계약해지를 당해야 했다. 60일에 이르는 공장 점거 후 끌려나온 후 지금까지 5년여를 길바닥을 누비며 싸워야 했다. 몇 차례의 고공농성과 60여일에 이르는 무기한 단식투쟁도 해보았다.

2008년 단식 40여일 째인 그와 함께 국회의사당 내 홍준표 원내대표실 점거 농성에 함께 하기도 했다. 강제로 끌어내려는 이들에 맞서 하얀 소복으로 갈아 입은 그는 값비싼 카펫 위에 누워 ‘나를 죽여서 내보내’라고 했다. ‘860만 비정규직의 눈물과 설움을 너희들이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 함께 들어간 나는 다시 눈물을 꿀꺽 삼켜야 했다. 나를 끊임없이 가르치는 시대의 교사들은 그 어떤 누구도 아닌 바닥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이었다. 난 그들 곁에 서 있을 때가 영광이었다.


그는 그렇게 이 땅 민주주의 투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왔다. 드러나지도 않는 평범한 이였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그는 그 어떤 386이니, 민주투사들이니 하는 명망가들보다 더 구체적이고 가혹한 시대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그런 평범들이 모여 시대의 보편을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진보정당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상징으로, 화살촉으로, 육탄으로 서울시의원 후보로 추천되었다고 한다. 40일 굶은 몸으로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던 그 분노와 용기로 모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굳건한 희망으로, 그가 다시 부르주아 정치판에 희석되지 않는 새로운 노동자민중 정치투쟁의 모범으로 훌륭히 서 나아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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